그토록 보고싶던 [극장전]을 봤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던 순간부터 홍상수의 영화에 '빠져'버렸다.
그 뒤로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까지...
거기도 서열은 있다. 최고는 [오! 수정]이었고 최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였다.
그러나 그 서열은 단순히 영화의 '재미'에만 기초한다.
그의 작품 모두에서 드러나는 홍상수의 '맛'은 유효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영화가 어떤 헐리우드 영화보다 재미있어서 좋고,
이번 [극장전] 또한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영화 안의 영화로 1부, 2부가 나뉘어지는 형식의 실험...
그리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요소들이 많은 평론 거리를 안겨주었다고 말들하지만...
잘 모르겠다.
난 그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저열함'이 좋다.
아주 감정 이입이 팍!팍! 된다.
[생활의 발견] 이후에 두번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한
동수 역의 김상경의 연기는... 참 뭐라 해야 하나...
'잘 한다'는 표현은 이상하고 '인상적이다'라는 게 낫겠다.
영화는 판타지다. (드라마도 판타지고 TV는 판타지 월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진짜 현실을 만나면 아주 당황스럽다.
극중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은 받아들이기 쉽게 단편적인 성격으로 설정된다.
헌데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렇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참 모습을 어찌 알 수 있겠나.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섞여들어간 공동체에 따라, 구성원에 따라 달라진다.
마치 아주 다른 인격체인 것처럼.
우연히 만난 친구 가족과 중국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동수.
친구가 대학선배 영화감독 이형수와 동수가 많은 면에서 닮았다는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화제를 돌리며,
예전에 친구 아내가 해준 갈비찜이 너무 맛있었다고...
그 친구가 아내의 요리 자랑을 꼭 여섯번을 했다고...
웃음꽃이 피고 분위기가 밝아진 가운데
카메라는 동수를 줌인(zoom-in)하고 이내 싸늘하고 굴욕적인 표정으로 변하는 동수의 얼굴.
그 저열함은 우리의 '일상'이다.
영화속의 단편 영화 '극장전'에서 재수생 주인공(이기우)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소동을 벌이고,
엄청 혼내는 엄마 앞에 무릎꿇고 자기 말도 들어달라고...
나가죽으라는 엄마의 호통에 아파트 옥상에 뛰어올랐지만 가족들 아무도 따라 올라오지 않는다는 한숨을 쉬며
난간을 짚고 서있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일상'이라는 느낌.
인생에 기억될 소동을 벌이고 난리를 쳤지만,
그것이 그저 우리네 삶의 일상이라는 것.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렵지만...
내적인 표현으로는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느낌이라 말한다면... 부인하진 않겠지만...)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거의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일상의 모든 말들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한 사람의 하루를 쭉~ 따라가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인공이 밥을 먹었는데도 여자를 만나 '밥 안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의 모든 삶에도 그 하나의 말들과 반응들에는 이유가 있다.
나의 생각과 말들을 집요하게 분석해보면 나의 영적상태, 정신적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왜 많은 한숨을 내쉬었는가.
뭔가 작고 뜨거운 것이 배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왜 이리 속이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왜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목과 어깨가 뻐근하게 느껴지는가.
모든 말과 행동과 반응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극장전]에서 볼 수 있었던 동수(김상경), 상원(이기우), 영실(엄지원)의 삶을 '관찰'하면서...
나의 하나 하나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길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걸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냥 모르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식으로 나의 하루를 주목해본다면
내게서도 바로 그들 같은 '저열함'을 발견하게될지 모르겠다.
"우리...사람 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생활의 발견] 中에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