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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군요..컨퍼런쓰 때 ..
by poiema at 05/02 정말 좋은 글들 많이 읽고.. by 항해자 at 04/25 인스퍼레이션 '가난한 자.. by 최윤정 at 03/29 네! ^^ by 박정인 at 03/27 난 다른건 몰라도 에니엔.. by 박정인 at 03/27 ~~ 같아요. 라고 쓴 .. by 박정인 at 03/27 사서고생. 암튼 못 말.. by joytime at 01/21 |
![]() 예전부터 ‘뛰어난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져 왔지만 현대에 와서 인간의 문화적인 삶이 강조되고 그 가치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면서 그런 말은 당연히 타파되어야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대 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발하는 ‘아티스트(예술가)’가 있긴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면 작품에 예술적인 가치를 담는 것만큼이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의 CCM 시장 말이다. 80년대 후반 CCM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 놀라운 가치를 품은 기독교문화(어쩌면 ‘복음의 본질’)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은 무지하고 유연성 없던 당시의 교회와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면서 ‘이것은 인식의 문제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 21세기가 수년이나 지난 지금... (시간이 해결해 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의 새로운 숙제들과 함께) 거대하고 두텁게만 여겨지는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유일한 대안’이라고도 보여질 만큼 현대의 강력한 수단인 CCM은 그동안 뭘 해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의 홍역을 앓았지만 그것이 면역성을 보유하며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혹 영원한 불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며 그 어떤 다른 문화영역보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움 또한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에 복음의 씨를 심으시고 놀라운 부흥을 지나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분이 일하실 것이란 확신은 변함이 없다. 종교개혁 때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교회의 현모습 가운데서도 호세아의 방탕한 아내를 통해 보이신 것처럼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회를 품어 안으시는 그 분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열심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기본적인 믿음 말이다. 전에 없던 산업적 황무지 가운데 서 있지만 겉모습과 달리 하나님은 우리 내면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2003년을 지나면서 전체적인 음악의 품질이 크게 향상되고 장르적으로 다양화되며 탄탄한 메시지를 가진 팀들이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음은 그 한 증거로 보여진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고 우리는 할 것이 없는 듯 뒤로 물러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모든 지혜와 방법을 동원해 고민과 수고를 해야하지 않을까. 우린 그렇게 뛰어난 앨범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산업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많은 책임을 ‘성숙되지 못한 한국 크리스천들의 수준’이나 ‘올바른 크리스천 미디어의 부재’ 등으로 돌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어느 정도는 직접 음악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와 프로듀서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 단 그것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소통의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즉, 아티스트가 대중과 소통을 원하는가... 라는 말이다. 어떤 예술가는 대중이 이해하는 예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예술작품은 다음 몇 세대가 지난 후에야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자... 그 의미가 많이 혼란스러운 단어이지만 CCM의 원뜻을 새삼스레 돌이켜 본다면 contemporary... 즉 동시대, 바로 우리 시대의 크리스천 뮤직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왜 우리는 그 오랜 전통 속에 입증된 ‘예술적인’ 찬송들이 아닌 동시대의 음악을 시도하고 있는가. ... 그렇다. CCM은 그 태생 자체에 ‘소통의 의지’를 품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와 호흡하며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CCM은 존재하는 것이다(CCM의 세속문화에 대한 ‘대체문화 기능’은 부가적인 유익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다가 많은 CCM이 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CD나 테입 등의 매체에 담겨 상품으로 진열되고 있다. ‘녹음’과 ‘복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학위 논문처럼 기념품이나 증정용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수천장의 앨범을 찍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앨범의 제작만큼 적극적으로 소통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그렇지 않다면 골방에서 홀로 그 음악으로 하나님께 부르면 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CCM 아티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중 하나가 그것이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자신 안에 대중과의 ‘소통의 의지’를 분명하게 정의하기 바라는 것이다. 여태까지 좋은 아티스트들(여기서는 음악사역자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지도)이, 이 의지를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 외형적으로 ‘상업성의 추구’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소통의 의지’(이후론 ‘대중성’이라 표현해보자)는 의미적으로 이 사역의 목적에 가치를 두는 것이고 ‘상업성’은 그 안에 담긴 게 무엇이든 현금만 손에 쥘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추구하는가는 겉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기에 자신과 하나님과만의 관계일수 있다. 사실 이미 대다수의 CCM 아티스트들이 그걸 고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그 말 또한 분명 사실일 것이다. 부르심을 따라 사역의 길을 시작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떠안을지도 모르는 앨범의 제작비용은 너무 엄청난 짐이 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앨범이 잘 팔리기 원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새삼스럽게 대중성을 거론하는 이유는 좀 더 적극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인 동시에, 몇몇 ‘탁월한’ 아티스트 - 어 쩌면 한국 CCM을 짊어져 주어야 할 아티스트들이 그 보석 같은 메시지를 담고도 많은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다시 ‘웰 메이드’로 돌아가보자. 한국 영화계에서 몇몇 작가주의적인 의식을 가진 뛰어난 감독들이 그 작품의 가치에 비해 흥행에서 실패했을 때 이들은 관객의 수준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특히 영화의 경우는 단지 감독만의 실패가 아니라 이를 위해 모든 걸 걸었던 수많은 스텝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반드시 대중성을 안고 호흡하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다음 작품에서 그 책임을 다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저속한 상업주의가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well-made) 작품들이 그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전체의 신뢰도를 끌어올려 그 엄청난 물량의 헐리웃 영화들을 잠재우고 점유율 50%라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흥행이란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이나 국수주의적인 한국인의 성향 등 그 안에 또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CCM 산업 안에서 이런 역할을 해줄 ‘웰 메이드 CCM’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은 두말할 것 없이 분명하다.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하면서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덤핑 판매, 음악과 관련 없는 이벤트와 동정심 유발 등 - 엉뚱한 상업성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훌륭한 퀄리티와 대중성을 가진 좋은 음악으로 정면돌파 해 나갈 수 있도록 이런 앨범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CCM 시장은 좋은 상품이 없다기보다 시장 자체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시급한 듯 보인다. 사람들이 기독교서점에 오지 않는다... 앨범을 사지 않는다... 참 안타까운 현상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크리스천의 책임’ 등을 언급하기 전에 우리 속사람의 바른 태도와 믿음으로 하나씩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된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 7:18)” |